"舍生取義(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고)/殺身成仁(자신을 죽여 인을 이루었네)/安君一擧(안중근의 의거에)/天地皆振(온 천지가 들썩이네).”
일본의 대표적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운동가인 고토쿠 슈스이(1871∼1911)가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며 쓴 한시다. 1910년 샌프란시스코평민사가 제작한 안 의사 사진엽서에 그의 친필로 실렸다.
사진 원본은 안 의사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 자료 성격인데, 일반에 유포되면서 기념물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경시청을 비롯한 각 도 경찰서에 연루자 검거를 위해 배포한 것이란 설명이다. 수사용 사진을 보도용으로 내놓은 셈인데, 업자들이 엽서 소재로 활용하면서 조선 민중의 관심과 숭배를 가속화했다. 국내 학계 일부에선 쇠사슬에 묶인 안중근의 모습을 담은 엽서가 비하 의도였다고 단정했지만, 실제 유통·구매 양상은 달랐다. 사진 속 안 의사의 눈빛과 풍모에 감명을 받은 대중이 앞다퉈 엽서를 구매하자 당황한 당국이 판매를 엄금하는 조처를 내렸다는 기사가 무수히 남아 있다.
이 엽서는 20세기 초 일본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가 안중근을 찬양하는 한시를 쓰면서 각색됐다. 미국의 동료 운동가에게 보내져 영문 해설도 붙었다. 이 과정에서 한인단체 국민회의 북미지역 총회 기관지 <신한민보>가 엽서를 입수했고, 안 의사 순국 직후인 1910년 3월 30일 치에 추모 논설과 함께 소개됐다고 한다.
고토쿠는 1910년 6월 ‘대역사건’으로 체포돼 처형을 당해 그의 한시 엽서가 인쇄되진 못했지만, 미국 동포신문이 사진엽서 이미지를 실으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도 교수는 “안 의사의 사진엽서가 미국에 건너가 지식인의 평화연대를 촉발하며 전파된 것은 안중근 거사의 세계적 의미를 보여주는 일화”라며 “닫힌 민족주의에 기대 엽서를 비하의 산물로만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고 말했다.